친구를 만나고 돌아와서 - 친구를 찾다.
중년개발자
@loxo
7일 전
1. 영어의 Friend — 친구는 원래 '사랑하는 사람'이었다
영어 friend는 고대 영어 freond에서 왔고, 더 거슬러 올라가면 “사랑하다”라는 의미의 인도유럽어 어근 *pri-*와 연결됩니다. 즉 아주 오래된 언어적 층위에서 보면 friend는 '나와 친한 사람'보다 먼저 '내가 마음을 두고 사랑하는 사람'에 가까웠습니다. (Etymology Dictionary)
그러니까 친구의 출발점은 어쩌면
나를 좋아해 주는 사람
보다
내가 그 사람의 존재 자체를 귀하게 여기는 사람
에 가까운 것입니다.
2. 그리스의 Philia — 친구는 '서로 잘되기를 바라는 관계'
아리스토텔레스가 사용한 philia(φιλία)는 오늘날 영어의 friendship보다 훨씬 넓었습니다.
친구뿐 아니라 가족, 동료, 공동체 구성원까지 포함할 수 있는 개념이었습니다. 그리고 아리스토텔레스가 가장 높은 형태의 우정에서 중요하게 본 것은 상대방에게서 무엇을 얻기 위해서가 아니라, 그 사람 자체를 위해 잘되기를 바라는 것이었습니다. (스탠포드 철학 사전)
그래서 현대 철학에서도 우정을 구성하는 핵심으로 대체로
서로를 위한 관심 → 친밀함 → 함께 시간을 보내고 삶을 나눔
을 이야기합니다. (스탠포드 철학 사전)
여기서 아주 중요한 것이 하나 있습니다.
친구는 일방적인 사랑이 아니라 '서로 알고 있는 마음'이라는 것입니다.
내가 너를 친구라고 생각하고
너는 나를 모른다면
그것은 친구가 아닙니다.
친구에는 반드시 어느 정도의 상호성이 들어갑니다.
3. 그런데 한자 '朋友'는 또 전혀 다른 이야기를 한다
이 부분이 질문하신 내용에서 특히 재미있습니다.
현대 중국어의 친구는 朋友(péngyǒu)이고 한국어도 朋友라는 한자를 사용합니다.
그런데 朋과 友는 원래 같은 글자가 아닙니다.
고대 문자에서 朋은 두 줄의 조개를 끈으로 꿰어 놓은 모습에서 출발한 것으로 설명되며, 고대에는 조개 화폐의 단위로 사용된 흔적도 있습니다. 그러다가 '나란히 연결되어 있는 것', '무리를 이루는 것'이라는 의미로 확장되었습니다. (Kanjipedia)
반면 友는 두 손이 서로 마주 잡거나 서로 돕는 모습을 나타내는 글자로 설명됩니다. 『설문해자』에서는 友를 “서로 사귀고 돕는 것”으로 풀이합니다. (Shuowen)
그래서 아주 아름답게 풀어보면,
朋 = 함께 있는 사람
友 = 서로 돕는 사람
입니다.
그러면 朋友라는 말은 단순히
“같이 노는 사람”
이 아니라,
“함께하고, 서로 돕는 사람”
이라는 오래된 인간관계의 구조를 품고 있는 셈입니다.
실제로 ‘朋友’라는 단어의 역사적 기원을 분석한 연구에서도 朋의 핵심을 모이고 연결되는 것, 友의 핵심을 서로 돕는 것으로 설명합니다. (KCI)
4. 공자는 친구를 조금 더 무겁게 생각했다
『논어』에서 유명한 말이 있습니다.
有朋自遠方來,不亦樂乎
“벗이 먼 곳에서 찾아오니 또한 즐겁지 아니한가.”
그런데 여기서 朋은 단순히 페이스북 친구나 연락처에 저장된 사람이 아닙니다.
전통적인 해석에서는 뜻을 같이하는 사람, 즉 같은 방향을 바라보는 사람이라는 의미가 중요합니다. (China.org.cn)
그리고 현대 연구에서도 공자의 우정에서 중요한 것은 信, 즉 신의와 믿음이라고 봅니다. 친구는 단순한 즐거움의 관계가 아니라 서로의 인격을 성장시키는 관계였다는 것입니다. (HEP Journal)
그래서 동양과 서양의 연구를 묘하게 겹쳐 보면 재미있는 공통점이 나타납니다.
아리스토텔레스
친구란 서로의 삶이 잘되기를 바라는 사람.
공자
친구란 서로의 뜻을 나누고 신의를 지키며 서로를 바르게 만드는 사람.
현대 철학
친구란 상대방의 행복을 그 사람 자신을 위해 바라는 사람. (스탠포드 철학 사전)
결국 문명은 달라도 상당히 비슷한 곳에 도착합니다.
5. 그래서 '친구'의 진짜 반대말은 '적'이 아닐지도 모른다
저는 여기에서 친구라는 단어의 가장 깊은 의미가 나온다고 생각합니다.
친구의 반대는 적이 아니라 '무관심한 사람'일 수 있습니다.
적은 적어도 나에게 관심이 있습니다.
나를 싫어하고
나와 싸우고
나를 이기려고 합니다.
그러나 친구는 다릅니다.
친구는 내가 잘되었을 때
자기 일이 아니어도 기뻐하고,
내가 무너졌을 때
내가 무너지지 않았던 사람처럼 대해주며,
내가 잘못했을 때
나를 잃지 않기 위해 때로는 아픈 말을 해줍니다.
그래서 친구는 나를 편하게 해주는 사람만이 아닙니다.
때로는
나를 불편하게 해서라도 나를 지켜주는 사람
입니다.
이것은 공자의 우정론에서 말하는 충고와 선도, 즉 서로의 삶을 바른 방향으로 이끄는 관계와도 맞닿아 있습니다. (KCI)
그리고 이 모든 이야기를 하나로 묶으면
친구라는 말
살면서 우리는 수많은 사람을 만난다.
학교에서 만나고,
직장에서 만나고,
술자리에서 만나고,
어떤 날은 우연히 만나
한참을 웃다가 헤어진다.
그중 몇 사람은 연락처에 남고,
몇 사람은 사진 속에 남고,
몇 사람은 이름조차 희미해진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아주 오랜 시간이 지나도 마음에서 지워지지 않는 사람이 있다.
우리는 그 사람을
친구라고 부른다.
그런데 '친구'라는 말은 생각보다 오래된 말이다.
영어의 friend는 아주 오래전
'사랑하다'라는 말에서 시작되었다고 한다.
그리스의 철학자 아리스토텔레스는
우정을 단순한 친분이 아니라
서로의 삶이 잘되기를 바라는 관계라고 보았다.
중국의 오래된 글에서 친구는 朋友라고 쓴다.
朋은 함께 모이고 연결되는 것을,
友는 서로 돕는 것을 품고 있다.
서양과 동양의 말은 서로 다르고
발음도 다르며
문자의 모양도 다르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오랜 시간을 거슬러 올라가면
모두 비슷한 곳에서 만난다.
친구란 나에게 필요한 사람이 아니라
그 사람 자체가 소중한 사람이라는 것.
그래서 진짜 친구는
내가 잘될 때만 곁에 있는 사람이 아니다.
내가 실패했을 때도
나를 이전과 똑같이 바라보는 사람이다.
내가 세상 사람들에게
초라해 보이는 날에도
내가 한때 어떤 사람이었는지를 기억해주는 사람이다.
내가 잘못했을 때
무조건 내 편을 들어주는 사람이 아니라,
내가 나 자신을 잃어버리지 않도록
때로는 아픈 말을 해주는 사람이다.
친구는 내 인생을 대신 살아주지 않는다.
내가 넘어질 때
나를 대신 넘어져 주지도 못한다.
다만 내가 다시 일어날 때까지
말없이 옆에 앉아 있을 수는 있다.
어쩌면 친구란
문제를 해결해주는 사람이 아니라
내가 그 문제를 견딜 수 있도록
혼자가 아니라고 느끼게 해주는 사람인지도 모른다.
그래서 나이가 들수록
친구가 줄어드는 것은 어쩌면 자연스러운 일이다.
젊을 때의 친구는
함께 웃을 사람이 많아서 친구였지만,
나이가 들수록 친구는
함께 침묵할 수 있는 사람이 된다.
매일 만나지 않아도 괜찮고,
몇 년 만에 만나도 어제 헤어진 것처럼 편하고,
서로의 삶을 모두 알지 못해도
굳이 설명하지 않아도 되는 사람.
그 사람이 잘되었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
내가 뒤처졌다는 생각보다
먼저 기쁜 마음이 드는 사람.
그리고 내가 잘되었을 때
진심으로 축하해주는 사람.
그런 사람이 친구다.
어쩌면 인생에서 가장 슬픈 일은
친구가 없는 것이 아닐지도 모른다.
친구였던 사람을 잃어버리고도
그 사실을 모른 채 살아가는 것.
더 슬픈 것은
친구가 많다고 믿었는데
정작 내가 가장 힘들었던 어느 날,
전화할 사람이 한 명도 떠오르지 않는 것이다.
그래서 친구는 숫자가 아니다.
백 명의 이름보다
새벽에 한 사람의 이름이 떠오르는 것이 더 큰 우정이고,
수십 년의 시간이 아니라
그 시간 동안 서로에게 얼마나 진실했는지가 우정의 깊이를 결정한다.
돌아보면 우리 인생에서
정말 귀한 사람들은
대단한 일을 해준 사람들이 아니었는지도 모른다.
그저 내가 힘들 때
옆에 앉아 있었던 사람.
내 이야기를 끝까지 들어준 사람.
내가 세상에서 가장 초라했던 순간에도
나를 함부로 대하지 않았던 사람.
그리고 내가 잘못된 길로 갈 때
나를 잃지 말라고 붙잡아준 사람.
그 사람이 친구였다.
세월이 흐르면
사람은 결국 많은 것을 잃는다.
젊음도 잃고,
돈도 잃고,
직장도 잃고,
어떤 꿈은 끝내 이루지 못한다.
하지만 인생의 마지막에 남는 것은
얼마나 많은 것을 가졌느냐보다
누구와 함께 걸었느냐일지도 모른다.
어느 날 아주 늙어서
지난날을 돌아보게 된다면,
나는 아마
내가 얼마나 성공했는지를 먼저 생각하지 않을 것 같다.
그때 내 옆에 누가 있었는지,
내가 누구의 인생에 따뜻한 사람이었는지,
그리고 누군가에게
'그래도 그 사람이 있어서 참 다행이었다'고
기억되는 사람이었는지를 생각할 것 같다.
그래서 오늘 문득 친구의 이름 하나가 떠오른다면
미루지 말고 연락했으면 좋겠다.
"잘 지내지?"
그 짧은 말이면 충분하다.
어쩌면 그 사람도
오래전부터 같은 생각을 하고 있었을지 모른다.
**친구란
내 인생에 잠시 등장한 사람이 아니라,
내가 살아온 시간을
함께 증명해주는 사람이다.**
그리고 정말 좋은 친구는
내 곁에 평생 남아 있는 사람이 아니라,
내가 그 사람의 곁에 없더라도
그 사람이 잘 살아가기를 진심으로 바랄 수 있는 사람이다.
그것이 사랑과 우정이
가장 아름답게 만나는 지점인지도 모른다.
친구.
참 이상하고 따뜻한 말이다.
세상에는 수많은 사람이 있지만
마음 깊은 곳에서
'이 사람은 잘 살았으면 좋겠다'고
바랄 수 있는 사람은 많지 않으니까.
어쩌면 한 사람의 인생에서
가장 큰 부자는
많은 것을 가진 사람이 아니라,
마음속에 몇 사람의 이름을
끝까지 따뜻하게 간직하고 있는 사람인지도 모른다.
이 글의 핵심은 단순한 감성적 해석만은 아닙니다. **아리스토텔레스의 philia → 공자의 朋友와 信 → 현대 철학의 mutual caring(상호적 돌봄)**이라는 서로 다른 전통을 하나의 축으로 연결한 것입니다. 실제로 아리스토텔레스와 초기 유가의 우정을 비교하는 연구도 존재하고, 『논어』와 키케로의 우정론을 함께 연구한 한국 학술논문도 있습니다. (HEP Journal)
그리고 저는 이 연구들을 읽고 나면 친구의 가장 정확한 정의는 '나와 가까운 사람'이 아니라 '내가 그 사람의 존재 자체를 귀하게 여기는 사람'에 가까워진다고 봅니다.
그게 우리가 나이를 먹을수록 친구라는 말에 더 깊이 울컥하는 이유일지도 모릅니다.
젊을 때는 같이 놀 사람이 친구였다면,
나이가 들수록 내 인생의 시간을 함께 증명해 준 사람이 친구가 되기 때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