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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기

심연을 바라보되, 괴물이 되지 않는다는 것 - 니체

중년개발자
중년개발자

@loxo

9일 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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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연을 바라보되, 괴물이 되지 않는다는 것

니체는 『선악의 저편』에서 이런 말을 남겼다.

“괴물과 싸우는 사람은 그 과정에서 자신도 괴물이 되지 않도록 조심해야 한다. 그리고 네가 오랫동안 심연을 바라본다면, 심연 또한 너를 바라본다.”

이 말은 단순히 어두운 것을 오래 바라보면 어두워진다는 뜻이 아니다.

처음에는 내가 심연을 바라본다.

세상의 부조리를 바라보고, 누군가의 악의와 거짓을 바라보고, 나에게 상처를 준 사람을 바라본다.

나는 관찰자이고, 상대가 문제라고 생각한다.

나 → 심연

그런데 문제는 그것을 너무 오래 바라볼 때 시작된다.

처음에는 상대의 행동을 이해하려고 했지만, 어느 순간부터 상대의 방식으로 세상을 판단하기 시작한다.

“저 사람은 나쁜 사람이야.”

“사람은 원래 믿을 수 없어.”

“나도 똑같이 해줘야 해.”

“당한 만큼 돌려줘야 해.”

그러면서 어느 순간 내가 싸우던 대상의 논리를 나도 사용하기 시작한다.

그때 니체는 말한다.

“심연 또한 너를 바라본다.”

내가 심연을 바라본다고 생각했지만, 사실 그동안 심연도 나를 바라보고 있었던 것이다.

내가 분노를 바라보는 동안 분노가 나의 일부가 되고, 증오를 반복해서 생각하는 동안 증오가 나의 사고방식이 된다.

상처를 계속 되새기다 보면 사건은 이미 끝났는데도 그 사람이 내 안에서 계속 살아간다.

그 사람은 내 삶에서 떠났는데, 그 사람이 남긴 분노는 내 안에 남아 나의 생각과 행동을 결정한다.

그래서 니체가 말하는 “괴물이 되지 말라”는 것은 악과 싸우지 말라는 뜻이 아니다.

오히려 싸우더라도 그 싸움 때문에 내가 싫어했던 사람과 같은 인간이 되지 말라는 경고에 가깝다.

상대가 나에게 무례했다고 해서 나까지 무례해질 필요는 없다.

상대가 거짓말했다고 해서 나까지 거짓말할 필요는 없다.

상대가 나를 공격했다고 해서 내가 상대를 파괴해야 하는 것도 아니다.

상대의 행동은 상대의 책임이고,

그에 대한 나의 반응은 나의 책임이다.


그렇다면 실제로 어떻게 해야 할까?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은 화가 난 순간 행동하지 않는 것이다.

화가 나면 바로 답장하지 않는다.

바로 결정하지 않는다.

바로 판단하지 않는다.

바로 공격하지 않는다.

잠시 거리를 둔다.

그리고 자신에게 묻는다.

“나는 지금 무엇 때문에 이렇게 화가 난 것인가?”

여기서 한 단계 더 깊이 들어간다.

“저 사람이 나를 무시해서”에서 멈추지 않고,

“나는 무엇을 빼앗겼다고 느끼고 있는가?”

라고 묻는다.

존중받고 싶었던 것인지,

인정받고 싶었던 것인지,

억울했던 것인지,

배신당했다고 느낀 것인지,

두려웠던 것인지 살펴본다.

그러면 시선이 상대에게서 나 자신에게로 돌아온다.

이 순간부터 나는 심연을 바라보면서도 심연에 끌려가지 않기 시작한다.


복수와 경계를 구분해야 한다

괴물이 되지 않는다는 것은 무조건 참는 사람이 되라는 뜻도 아니다.

누군가 계속 나를 함부로 대한다면 단호하게 선을 그어야 한다.

하지만 복수와 경계는 다르다.

복수는

“너도 당해봐라.”

라고 말한다.

경계는

“나는 이런 대우를 받아들이지 않겠다.”

라고 말한다.

복수는 상대를 향해 움직이지만,

경계는 나를 보호하기 위해 움직인다.

그래서 우리는 착할 필요보다 단단할 필요가 있다.

단호하되 잔인하지 않고,

냉정하되 증오하지 않고,

거리를 두되 사람 자체를 미워하지 않는 것.

그것이 심연에 빠지지 않는 방법이다.


그리고 머릿속에서 계속 싸우지 않는 것

실제 싸움은 끝났는데 머릿속에서는 계속 싸우는 경우가 있다.

“그때 이렇게 말했어야 했는데.”

“다음에 만나면 이렇게 해야지.”

“저 사람은 원래 그런 인간이야.”

이렇게 계속 생각하다 보면 사건은 끝났어도 나는 끝내지 못한다.

그래서 질문을 바꿔야 한다.

“왜 저 사람이 그랬을까?”

에서

“이 사건을 통해 나는 무엇을 배웠는가?”

로.

그리고

“다음에는 나는 어떻게 행동할 것인가?”

로 바꾼다.

그러면 상처가 경험이 된다.


분노를 없애려고 하지 않는다

분노 자체는 나쁜 것이 아니다.

분노는 내가 무엇인가를 중요하게 생각하고 있다는 신호일 수 있다.

문제는 분노가 운전대를 잡는 것이다.

그러므로

“나는 화가 나지 않았다.”

라고 억지로 부정할 필요도 없다.

오히려 이렇게 말하는 것이 좋다.

“나는 지금 화가 났다.
하지만 이 감정이 내 행동을 결정하게 하지는 않겠다.”

감정은 인정하되 운전대는 넘겨주지 않는 것이다.


결국 세 단계만 기억하면 된다

① 멈춘다

“나는 지금 화가 났다.”

감정이 행동으로 바로 이어지지 않게 한다.

② 바라본다

“나는 무엇 때문에 이렇게 화가 났는가?”

상대의 잘못만 바라보지 않고 내 감정의 뿌리를 바라본다.

③ 선택한다

“나는 어떤 사람이 되고 싶은가?”

그리고 그 사람에 맞는 행동을 선택한다.

마지막 질문이 가장 중요하다.

“나는 어떤 사람이 되고 싶은가?”


누군가 나를 공개적으로 무시했다고 생각해보자.

첫 번째 감정은 자연스럽게 올라온다.

“저 사람에게 똑같이 해주고 싶다.”

여기까지는 인간적인 감정이다.

하지만 잠시 멈춘다.

“나는 지금 모욕당했다고 느끼고 있구나.”

그리고 다시 묻는다.

“내가 저 사람처럼 행동하면 결국 나는 어떤 사람이 되는가?”

그리고 선택한다.

“무례함은 분명하게 지적하되, 나까지 무례한 사람이 되지는 않겠다.”

바로 이것이 괴물과 싸우면서 괴물이 되지 않는 것이다.


심연을 바라보되, 심연에게 자신을 내어주지 않는 것

우리는 살아가면서 수많은 심연을 만난다.

배신도 만나고,

불공평함도 만나고,

사람의 이기심도 만나고,

때로는 내가 믿었던 사람에게 상처를 받기도 한다.

그것을 외면할 필요는 없다.

오히려 제대로 바라봐야 한다.

다만 그것을 바라보면서 내가 무엇이 되어가고 있는지를 함께 바라봐야 한다.

상처를 받은 것은 내 잘못이 아닐 수 있다.

그러나 그 상처를 들고 앞으로 어떤 사람이 되어갈 것인가는 나의 선택이다.

상대가 나에게 무엇을 했는지는 내가 결정할 수 없지만,

그 사건 이후 내가 어떤 사람이 될지는 내가 선택할 수 있다.

그러므로 분노가 올라오는 순간 이렇게 생각해보면 좋다.

“나는 지금 심연을 바라보고 있다.
하지만 심연에게 내 모습을 맡기지는 않겠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자신에게 묻는다.

“이 사람이 나에게 상처를 주었다고 해서,
나는 왜 그 사람 때문에 내가 싫어하는 사람으로 변해야 하는가?”

어쩌면 니체가 말한 “괴물이 되지 말라”는 말의 가장 현실적인 의미가 여기에 있을 것이다.

괴물과 싸우되, 내가 지키고 싶은 인간다움까지 함께 죽이지 않는 것.

그것이 심연을 바라보면서도 심연에게 삼켜지지 않는 방법이다.

#철학#니체#심리학#자기계발#인간관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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